해외살이 25년차. 해외살이를 하며 만나는 한인들의 공통점은 한국 사람이라는 점, 모국어가 한국어라는 점 밖에 없다. 출신 지역도, 나이도, 전공도 다 다르다 보니 해외에서 친구를 만든다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서 교제를 하다보면 욕도 오가지 않았는데 서로에게 '상처를 받았다', '저 사람과는 말이 안통한다'고 한다. 분명히 한국어로 말이 오고갔는데도 말이다. 또 다들 외롭다보니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듣는 사람은 없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진다. 집으로 돌아가며 🤬 "다시는 이 모임 나오나봐라…내가 다신 너를 만나나 보자!" 하면서 말이다.
다들 현지에 친구와 가족들이 있는데도 여전히 한국사람들과의 소통을 그리워 한다. 관계가 껄끄러워지면 작은 교민사회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들도 신경이 쓰인다.
나 또한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
〰️
그러던 어느 날 진짜 ‘나’ 로 살고싶은 소망이 생겼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부모에게 따뜻한 공감을 받아본적이 없기에, 타인을 공감한다는게 뭔지 감이 1도 없는 나를 만났다. 소통의 부재 속에서 커온 내 인생의 역사를 마주하게되었다. 아팠고, 많이 울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아픔을 다 느끼기로 했다.
진짜 나를 만나고 싶었기에. 내가 그렇게 다뤄진건 나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슬퍼하며 애도하고, 따뜻하게 나를 감싸줬다. 나를 다시 키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내가 원하는 말을 하고, 나이에 맞는 소통능력을 갖고 싶었다. 타인이 내 말을 못듣는다고 불평하기보다 내가 먼저 듣기가 되는 사람, 타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내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결심했다.
그런데... 어디서 시작을 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내가 자라면서 들어온 말들을 적어봤다. 그리고 내가 듣고 싶었던 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도 적었다. 말을 다시 세팅하기로 결심하니 처음엔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부자연스럽고 엉거주춤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 감정의 선들을 연결시키며, 원하는 욕구를 찾는 과정에서 과거의 사장된 욕구들을 마주하며 글을 써내려갔다. ✍🏻
또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법 배운 것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어색하다며 사람들에게 핀잔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듣기가 어려워 침묵만 하기도 했다. 그러면 집에 와서 실패한 대화를 글로 쓰고 연습하며 나 자신과의 연결을 계속 이어갔다. 🧐
그렇게 '대화' 라는 도구로 나 자신과 연결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점차 나의 욕구 에너지와 연결되니 아름답고 창조적인 내가 떠오르기 시작하며, 자유로움이 찾아왔다.
〰️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가슴 벅찼다. 나와의 대화가 솔직해지고 당당해지니,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가 익어가는 변화도 일어났다. 그렇게 지금은 각자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

|
해외살이 25년차. 해외살이를 하며 만나는 한인들의 공통점은 한국 사람이라는 점, 모국어가 한국어라는 점 밖에 없다. 출신 지역도, 나이도, 전공도 다 다르다 보니 해외에서 친구를 만든다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Judy
런던, 북경 거쳐 현재는 네덜란드에 살고 있습니다.
해외살이하는 한인들에게 창조적인 '자기' 와의 연결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